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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논의 잡설 (1): 근데 우리나라가 대통령제 국가 맞나? 정치


애초에 헌절에 헌논의를 국회의장이 꺼낸다는 자체가 어찌보면 어이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잊을 만 하면 튀어나오는 이야기이고 생각난 김에 오랫만에 블로그에 글도 써야 할 것 같아 평소 개헌논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해 두려고 합니다. 주로 배운 쪽이 권력구조 쪽인지라, 인권이나 환경,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의 기본 가치에 대한 부분보다는 권력구조와 정치체제 쪽에 중심을 둔 글이 될 것 같군요.

1. 근데 우리나라가 대통령제 국가 맞나?

 우리처럼 '제왕적 대통령'이 종횡무진하는 나라[주1]에서 무슨 헛소리냐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상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순수 대통령제로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비교정부론 쪽에서는 밥먹고 하는 일이 정부를 형태에 따라 분류해보는 일인데,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나라는 순수 대통령제가 아닌 '총리가 있는 대통령제'로 분류되는 게 보통입니다. 위키도 찾아보니 제각각이긴 하군요.(아래 그림 참조-우리나라는 프랑스와 같은 노란색, 준대통령제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해당 영문위키링크)

이쯤에서 그깟 총리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물으셔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사실상 한국에서 총리직이란 대통령 유고시 권력승계 1순위 외에 큰 의미가 없죠. 하지만 문제는, 총리는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부통령제에서 보통 대통령과 부통령이 한 세트로, 직접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것과는 달리, 애초에 내각제에서 유래한 총리는 국회의 대표인 거죠. "대통령이 지명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의회(다수당)가 정치적 부담을 각오한다면 총리자리를 오랫동안 비워놓거나 총리서리 상태로 수모를 겪게 하는 것이 가능한 게 우리 헌법 하에서의 총리 자리입니다.(ex>DJ시절 JP. 이외에도 의외로 군사정부 시절에도 총리서리가 꽤 자주 보입니다. 해당 국문위키링크)

게다가 국회는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권도 가지고 있죠.[주2] 여기서 한 발짝만 더 나가 각료 임명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게 되면,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는 사실상 프랑스 이원집정부제와 거의 비슷한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다수당이 동의하지 않는 각료를 임명할 수 없게 되면, 야대여소 상황에서 내각(장관들)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에 의해 구성되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 헌법은 이원집정부제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아니 이원집정부에 가깝다기보다는, 대통령제와 내각제적 특성이 어정쩡하게 섞여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군요.

총리의 존재 외에 정치학자들이 우리 헌법에 내재된 내각제적 요소로 지적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주3]
-행정부의 법률안 제출권(미국형 대통령제에서 법안 제출은 의회의 고유권한입니다)
-정부(각료)의 국회출석,발언권
-국무위원(장관)의 국회의원 겸직 허용(국회의원의 장관 임명 가능:역시 미국에서 모든 장관은 상/하원의원이 아닙니다)

글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길어져서, 정리하고 다음 주제는 따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현재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고 실제로 운용되고 있는 한국의 권력구조는 순수 대통령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사실상 행정부는 입법부에 대해, 입법부는 행정부에 대해 (미국식 대통령제에 비해) 비교적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현행 헌법이고, 군데군데 섞여 있는 내각제적 요소가 이런 행태를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개헌의 큰 방향이 정해진다면, 위에서 언급한 행정부와 입법부와의 관계들이 보다 매끄럽고 정교하게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견제'는 '분립'이 확실할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거니까요.

예를 들어 현재 그나마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4년 중임 정/부통령제로의 개헌이 구체화된다고 했을 때, 만약 총리제나 위에서 언급한 내각제적 요소들은 그대로 둔 채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만을 쏙 빼내어 고친다면 우리 헌법이 갖고 있는 이런 혼란은 더 가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예 미국식 제도를 베끼려면 좀 더 대놓고 베낄 필요가 있다는 거죠. 또는 위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총리를 의회가 선출하게 하고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게 해서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요는, 누더기식으로 당장 고치고 싶은 것만 고치지 말고 그에 걸맞는 세부제도들을 다듬어야 한다는 거죠.

다음 글에서는 대선과 총선의 선거시기에 대해 다뤄보고자 합니다. 좀 덜 딱딱하게 써 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_-


[주1]저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표현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인데, 그 이유는 한국의 대통령이 제왕적일 수 있는 힘은 공식적 권력이 아닌 사적 권력, 비공식적인 권력기관의 운용행태에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최장집은 이와 별개로 '제왕적 대통령론' 자체가 가지는 함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이용되는 방식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1판, 2002, 후마니타스)의 143p에서 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주2] 이번 천성관 검찰청장후보 낙마건에서도 볼 수 있듯, 국회의 인사청문권이 여론몰이와 결합되면 제한적이나마 거의 '동의권'과 맞먹는 기능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번 사태는 애초에 기본도 안 된 인사를 밀었던 청와대의 작품이지만...-_-

[주3]아래 내용들은 조정관,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원형과 변형', '한국 권력구조의 이해'(나남, 2004) p.92~93을 참고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지적하는 이런 내각제적 요소의 영향은 대통령의 의회에 대한 필요 이상의 개입과 그로 인한 대통령의 의회에 대한 우위입니다만, 저는 이런 내각제적 요소들이 역으로 의회의 대통령 권력에 대한 개입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고 봅니다. 특히 대정부 질문이 야당에 의한 정치공세의 장이 되거나, 입각한 여당 의원들이 때로 자신의 정치생명과 계파이익을 대통령의 지시보다 우선시하는 성향을 나타내는 상황 등을 들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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