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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미래 정치

FTA 격돌을 보는 솔직한 심정 (nepher) 에서 트랙백.

네퍼님의 글을 경제학적으로 비판할 능력도 없고, 크게 내 의견과 어긋나는 부분도 없는 것 같다. 다만 내가 이 시점에서 쓸 수 있는 글은 지난 2006년 한미FTA 체결 당시부터 지금까지 정치권은 정치적으로 뭘 했나.... 하는 되짚어보기 정도인 것 같아서, 몇 가지.

1. 곱씹어 볼수록, (소극적 반대론자 입장에서) 한미FTA의 원죄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고 가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없는 2006년, 그 시점에서 그가 과연 왜 뜬금없이 한미FTA를 들고 나왔는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많이 궁금하며, 그 에너지로 다른 소소한 개혁들을 마무리했더라면 정권재창출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보다는 초큼 나은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1-1.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아쉬운 것을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개인적으로 단임제대통령은 당선 당시의 큰 방향을 잘 고수하는 것이 지지자와 나아가 국민 전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길이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대통령은 좋게 말하면 끝없이 변화하는 사람(그것도 아주 극단적으로)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귀가 얇아서 줏대 없이 이리저리 휘둘린 사람이었다. 이에 반해, DJ와 MB는 자기가 하겠다고 약속한 방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않고 있는) 것 같다. 그 방향에 내가 동의하느냐, 그게 좋은 방향인가와는 별개로.

1-2. 노무현의 한미FTA에 대한 '구국의 결단'에 대해, 과연 그것이 김현종과 삼성경제연구소의 주장에 그가 휘둘린 것인지, 또는 노 전 대통령이 뭔가 다른 노림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의문거리 중 하나다. 억지로 선의로 해석하자면, 그는 미국적 제도와 시장주의가 우리 사회를 더 합리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닐까?

2. 노무현의 급선회로 인해 '난 누구? 여긴 어디?'의 상황에 빠진 건, 17대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던 열우당이었다. 뭐 이들이 청와대에게 뒤통수를 맞은 건 한미FTA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또한 결정적으로 열우당을 붕괴시킨 것은 한미FTA가 아니었나 싶다. 정동영, 유시민, 이해찬 등은 그래도 보스의 뜻을 따르려고 했고, 천정배, 김근태 정도와 소수파만이 FTA에 끝내 반대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균열은 작게는 당시 여당을 분열시켰고, 크게는 범진보진영을 산산히 부숴 놓았다.(뭐 원래도 한덩어리는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럴 리 없겠으나)

3. 뭐, 한나라당에게야 이런 상황이 꽃놀이패였을 수 밖에. 하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적극적으로 FTA를 비준할 필요성이 그들에겐 없었고, 반사이익만 꾸준히 챙기면 되는 입장에서 소극적 찬성 이상의 행동을 취할 이유도 없었다. 다만 최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당시 ISD와 관련해 한미FTA를 반대했다는 사실이 언급되었듯, 당시엔 한나라당에게도 한미FTA가 생소한 문제였고 그 득실에 대해 그들도 제대로 계산해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점도 우리가 기억해 둘 점이다.

4.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漁夫님이 가끔 지적하듯 현재 국회는 대도시에 비해 지방이 심하게 과대대표되고 있는 상황이다. 바꿔 말해 도시 주민의 한 표보다 지방 주민의 한 표는 평균 2배 정도의 가치를 가지는데, 만약 정당과 별개로 지역구민의 이해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개별 의원들이 행동한다면 한미FTA에 대한 의회의 대립양상은 현재와는 많이 달라야 한다. 농촌출신 의원들이 별 부담 없이, 선선히 소속정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르는 현재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5. 2007년에서 2011년까지, 한미 양국 의회 모두 FTA를 비준하기까지 자그마치 5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 5년 동안 양국 국회와 행정부, 이익집단이 보여준 행태는 완전히 달랐다. 꾸준히 진행된 추가협상에서 미국은 이 주체들이 적절히 싸워가며 '이익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한 반면에, 우리는 행정부만이, 더 정확하게는 통상교섭본부만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이것저것 내주는 데 그쳤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면서 부시행정부에서 포기했던 것들을 오바마가 추가시킨 반면, 한국은 정권이 바뀌면서 더 많은 손해를 봤다.

5-1. 하지만 일각에서 이야기했던 '노무현의 FTA는 착했는데 이명박의 FTA는 나빠요'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뭐 더 병신같을 수는 있겠지만...

6. 결국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이제 FTA는 발효될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다지 많이 남아있지 않다. 내년 총선 직후에 FTA를 폐기할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설사 여소야대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야권이 과감히 18대 대선 이전에 한미FTA를 폐기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러기엔 이미 현 야당의원들의 FTA에 대한 입장차가 크고, 또 대선을 앞두고 대선 이후로 선택을 미루고자 하는 유혹도 커질 것이다. 그리고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집권 1년차의 황금같은 시간을 한미FTA 폐지에 소모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고...

6-1. 따라서 그나마 정치권이 앞으로 한미FTA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한미FTA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이득을 키우는 것에 제한될 것이다. 그런데 4번에서 지적했듯이 의회는 앞으로도 실질적 이익과 피해보다는 정치적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일 가능성이 크고, 행정부는 관료적으로 FTA를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준수하는 데 급급할 것이다. 실제 이득과 피해를 보는 이익집단들이 정치권에 정상적인 경로로 의견을 전달할 방법은 여전히 요원할 것이고, 거리로 몰려나가 찬반 집회를 이어나가겠지. 더 쓰고 싶지 않아진다.

덧글

  • Nepher 2011/12/01 23:23 # 답글

    이 트랙백은 Nepher.egloos.com/301071 오히려 여기에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ㅋㅋ

    1. 동의합니다. 다만 좀 원론적인 입장에서, 공이 있다면 노통에게도 지분이 있고, 과가있다면 역시 노통에게도 지분이 있겠죠. 그리고 특히 동의하는 건, 그런 불도저 근성을4대개혁 입법에 투자했다면 좀 더 나았을 거고, FTA를 안했다면, 그리고 최소한 한미FTA논쟁이 11년에 다시 벌어질 것이었다면 07년의 그런 정국은 없었을 거고, 고인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도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었겠죠.

    1-1. 저는 MB의 경우엔 바라는 건 항상 같은데, 그걸 남들이 저지하는 것이 더 노통이나 DJ에 비해서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노통의 시대에는 닉슨이 중국에 가는 효과도 있고, 또 지금처럼 진보적인 열기가 크게 솟지 않았죠. DJ때는 사실 경제가 좆망인 마당에 함부로 이상한 소리 하다간 두들겨 맞기 딱 좋은 상황이었고요.

    1-2. 저는 둘 다라고 봅니다. 아니면 둘 다 아니거나. 솔직히 노림수가 있다면 이이제이고, 없다고 하면 그냥 휘둘린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죠.

    2. 저는 애당초 열린우리당이 FTA가 아니더라도 분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또 애당초 그 당시에 '범진보진영'이라는 게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게 있었다면 아마 05년까지였을 거고, 대추리나 이라크 파병등의 문제로 이미 파열이 될대로 되어 있었죠. 최장집 같은 사람들이 '노무현과 민주세력은 족보도 다르고 난 니들 애비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고;;

    3. 동의합니다.

    4. 저는 이런 사례를 보면, 한국의 지방자치제나 지역구라는 개념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지방자치제는 자치의 관습이 있는 나라라면 충분히 긍정적입니다만, 한국은 애당초 '중앙집권적 왕권국가'였던 역사가 길죠. OTL;

    5. 클래스의 차이죠. 물론 미국이라고 허먼 케인같은 막장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6. 저는 민주당 자체도 의견이 많이 갈리는 상황에서, 당론에 따르라는 식으로 밀고 가는데도 정도가 있다고 봅니다.

    6-1. 막줄 말고는 동의합니다. 사실 전 이래저래 더 할 말은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고요. 하하.

    - 덤으로 저는 한미FTA논쟁에선 이미 서로의 ㅄ력을 극한까지 끌어낼만큼 끌어냈다고 봅니다. 한나라당이야 애당초 내놓은 애들이라 그렇다 쳐도, 개혁진영은 개혁진영대로, 진보진영은 진보진영대로 구조적, 이념적 문제를 몽땅 노출했죠. 트랙백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많은 활발한 교류 부탁드립니다.
  • WALLㆍⓚ 2011/12/04 22:29 #

    답글이 좀 많이 늦었습니다. 긴 리플 먼저 감사드립니다.

    1-1. 물론 MB에 대한 저지가 더 강한 것 같기는 한데, 그 원인제공 역시 MB가 하는 측면이 많은 것 같아요. 여론관리/지지층관리 능력에 있어서 현재까지는 DJ>>노통>MB 정도인 것 같습니다.

    2. '범진보진영'이라는 표현보다는 02년 대선에서 그나마 노통을 찍었던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뻔 했습니다.

    4. 네. 여전히 중앙집권의 전통이 강하죠 ㅠㅠ

    5. 슬프지만 클래스의 차이 맞죠 ㅠㅠ 재협상 과정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건 결국 이명박 행정부와 한나라당의 책임으로 봐야 할 텐데, 미 의회 비준 전까지 다들 별로 관심도 없었고 딱히 한 것도 없죠. 반대파는 반대파고 자신들은 그나마 더 (미국을 상대로) 많은 것을 챙겨야 할 입장인 건데.

    저도 활발한 교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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